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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천사 최춘선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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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201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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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동화에서 최춘선 할아버지를 만나 보았어요. 할아버지의 별명이 무엇이지요? 그래요 맨발의 천사에요. 할아버지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았어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독립운동을 하고 이제는 많이 늙고 힘이 없는데도 예수님을 전하면서 매일 전철역에서 외쳤어요. 왜 할아버지는 맨발로 다니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것을 보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하나 되기 원하시는데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미워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할아버지는 매일 맨발을 벗고 전철에 나가복음을 전하셨어요. 부자였던 할아버지가 가장 낮은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신 것처럼 우리 예수님도 세상을 만드신 왕에서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섬기셨답니다.

    예수님은 그냥 집도 아니고 방이 없어서 말들이 쉬고 있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어요. 그리고 말들의 밥그릇인 구유에 뉘여 있었어요. 왕이 황금으로 된 침대도 아니고 말의 밥그릇에 짚더미를 놓고 그곳에 초라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그렇게 낮은 모습으로 오실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의 죄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려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답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친구들! 크리스마스는 이런 날이에요. 선물과 산타와 신나는 놀이를 하는 날이 아니라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날이랍니다. 그러면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슬퍼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해보세요. ‘죄’라는 감옥에 갇혀 슬퍼하며 울고 있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시기 위해 오셨어요. 만약에 10년 동안이나 감옥에 있던 사람이 자유롭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우리도 오랫동안 죄 가운데 빠져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 받게 되었어요. 그러니 낮은 모습으로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해주시러 오셨으니 기뻐하고 또 기뻐해야죠. 바로 그러한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는 날이 크리스마스랍니다.

    목동들이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천사로부터 듣고 기쁨으로 달려와서 경배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탄생의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함께 기뻐해야 해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누구시라구요? 네. 바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에요.

     

    본문해설

     

    베들레헴

    구약 성서에서 베들레헴은 주로 비극과 슬픔의 배경이 됩니다. 창세기 35장 16~20절과 48장 7절에 의하면 라헬이 바로 이 근처에서 죽어 장사되었고, 또 레위인의 첩이 마을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강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 곳입니다. (삿19장) 에스라2장 21절과 느헤미야 7장 26절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길에 베들레헴을 언급하고 있으며 예레미야 41장 17절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왕으로부터 도망하여 애굽으로 달아날 때 베들레헴 근처에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베들레헴이 위대한 왕 다윗이 살았던 동네라는 것과 연결되면서 장소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특히 미가서 5장 2절의 예언을 통해서 메시야가 탄생될 것이라 예언되는 장소가 됩니다. 슬픔의 장소였던 베들레헴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희망의 장소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다시읽기/윤철원/이레서원 참조

    구유

    누가복음 2장에서는 구유가 세 번씩이나 사용되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7,12,16절)이는 그것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1장 3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불평과 연관시키는 해석이 있습니다. 1장 3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불평과 연관시키는 해석이 있습니다. 1장 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라고 되어 있는데 누가는 구유에 대한 언급을 가지고 이제 이사야의 예언이 폐지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주님의 구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자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이 알려진 것은 예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 목자와 같은 역할이라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목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난하고 천한 부류의 사람, 혹은 죄인들인데 누가는 그들이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나 경배한 사람이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니는 헤롯왕이 예수의 탄생에 관심을 가진 것과 대조가 됩니다. 헤롯은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의 목자들은 메시야를 찾아가 경배하고 있습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은 예수님 앞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김득중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참조

     

    아무리 방이 없어도 애를 낳을 곳이 구유 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무관심과 사랑없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었다 해도 한 생명이 탄생하는 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미세야 상과는 전혀다르게 예수님께서 섬기는 모습으로, 대속물로 오셨음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떠들썩하게 등장해서 유대인의 왕을 찾았던 동방박사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기쁨으로 경배한 것은 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높은 신분의 유대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찾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을 섬기기 위해 낮고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슬픔의 장소를 기쁨으로 바꾸시며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섬김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맞이하는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처럼 무관심이나 다른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