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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관찰] 변화 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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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201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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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되었어요!!!

     

    준비물

    녹말(전분가루), 요오드, 비커, 뜨거운 물, 숟가락

    Tip 요오드는 약국에서 소독약(투명한 것은 과산화수소이므로 검은 소독약을 구입하세요)을 사시면 됩니다.

     

    진행방법

    1. 비커에 뜨거운 물을 담고 녹말을 잘 저어 녹여줍니다.

    2. 이 녹말 물에 요오드를 떨어뜨려 색 변화를 관찰합니다.

    3. 녹말과 요오드가 만나면 물색깔이 녹말-요오드 반응에 의해 청남색(거의 검정에 가까움)으로 변합니다.

    4. 청남색으로 변화된 물에 녹차 티백을 넣으면 다시 처음 색깔로 돌아옵니다(단, 티백에서 녹차가 우러나와 약간 노란색을 띠게 됩니다).

     

    원리

    요오드와 녹말이 만나면 요오드가 변신해 녹말 안으로 들어가서 색깔이 검게(청남색) 변하게 됩니다. 이 때, 녹차 티백을 넣으면 녹차 티백의 비타민 C성분이 요오드가 변신하는 것을 막게 됩니다. 따라서 요오드는 변신하지 못해 녹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검게 변했던 색이 다시 원래대로 (녹말색) 돌아오는 것입니다.

     

    적용

    친구들 ! 실험과 관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우리 친구들이 많이 알고 있지만,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겠어요.

    친구들! 이 세상을 누가 만드셨지요? 그래요. 하나님RP서 이 세상을 만드셨어요. 맨 처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이 용액처럼 (녹말을 풀어놓은 물을 가리키며) 깨끗하고 또 아름다웠어요. 우리들의 마음 역시 아주 깨끗했답니다.

    (요오드 용액을 붓습니다) 그런데 그만 죄가 우리 마음을 더럽히게 되었지요. 이 세상도 죄로 인해 깜깜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어두운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어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이렇게 깨끗하게 씻기게 되었답니다.

    (녹차 티백을 넣고 흔들면 물을 다시 깨끗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이 죄의 문제를 깨끗하게 , 아주 깨끗하게 해결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도 죄를 이기고 부활할 것임을 보여주셨답니다.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2-22절

     

    믿음의 근원, 부활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린도전서 1장 7-8절)

     

    고린도전서는 어느 서신보다도 부활의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고 있습니다.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에 관해 다음의 세 가지로 논증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의 근거라는 것. 둘째, 사죄의 믿음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는 것. 셋째, 죽은 자를 위한 소망을 포함해 그리스도인의 모든 소망의 필수적이 전제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바울은 땅에 묻힌 몸의 부활을 ‘새롭고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말하고 ‘썩을 몸이 심어지고 썩지 않을 영원한 몸으로 태어 날 것’이라고 비교하고 있는데,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교회는 현재 이 땅에서의 삶만이 아닌 앞으로 있을 부활의 삶을 바라보며 ‘이미-아직’의 긴장 상태에서 궁극적인 실체를 미리 보여주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구조를 통해 각각의 은사들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마침내 부활하여 새 생명에 이르게 됨을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을, 13장에서는 그 몸의 모든 지체들이 하는 행동의 중심을 이루는 사랑의 법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15장에 와서 부활을 이야기 합니다. 이 때, 부활은 이 땅에서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교회들로 하여금 눈을 들어 영원을 바라보게 하며 성도들이 영원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12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라고 책망합니다. 당시에는 유물론적 사상으로 죽음 이후에 삶 부정하는 에피쿠로스주의, 헬라의 이원론에 근거하여 ‘영혼은 불멸하나 몸은 썩어 없어짐’을 주장하는 플라톤주의, ‘부활은 영적 사건으로만 의미가 있고 육체적 사건이 아니다’라는 스토아주의와 ‘종말은 이미 실현 되었고 이미 성령을 받아 지금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고 영적 구원을 받았으므로 부활이 필요없다’라고 주장하는 열광주의자들과 같은 사조들이 유행하고 있던 시기라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여러 가지 부활에 대한 오해와 의심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들은 ‘이미’와 ‘그러나 아직’에 대한 역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강한 어조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의 사실성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5장 8절에서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분명히 자신이 부활의 증인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을 통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로 말이암은 것이라”

    자신의 믿음의 증거가 복음,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이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곧 복음의 핵심이며 거기에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성경은 구원의 사건 모두 구약을 통해 이미 예언된 것이며, 예언한 그대로 메시야가 오셨고 고난 받아 죽으셨으며(시22편, 사53장, 호6장)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3절, 4절). 예수님 자신도 죽음과 부활이 ‘성경대로’ 될 것임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 24장 26절~27절)

    바울은 강하게 말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이나 불신자들이나 죽은 후에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멸망하게 됩니다(고후 2:15) 따라서 부활은 우리 믿음의 결정적 밑거름이 됩니다. 바울 또한 이 세상의 삶만이 전부였으면 그렇게 극심한 어려움들을 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죄를 이기며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먹고 마시며, 마치 이생의 삶이 전부인 마냥 살아 갈 것이고 그것은 내세뿐 아니라 현세까지 빼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품은 자들은 영원한 것을 바라며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15:34)’는 경고를 마음에 새기며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 신앙의 근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