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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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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20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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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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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무엇과 동행하십니까?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오늘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욕이 표준화된 공간속에서,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오늘날 십대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와 미디어 총체적인 문제입니다. 오늘날 욕이 들어가지 않는 한국영화는 흥행할 수 없습니다. 폭력과 음란은 우리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톡톡튀는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왕따가 아닌 이상 혼자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둘씩, 셋씩, 혹은 5-6, 7-8명씩 무리지어 다닙니다. 그 가운데에는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탑깝게도 그들의 말과 행동속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모습을 찾기가 매우 힘듭니다. 쉴새없이 떠드는 학생들, 80%는 욕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와 무엇과 동행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에녹을 통해서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는가 살펴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의 결말이 어떠한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시대 배경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던 당대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씀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사망이 장차 온다는 뜻이요,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강자라는 뜻이요, 라멕의 아들 노아는 홍수시대의 사람입니다. 이것을 보면, 므두셀라시대부터 사망이 다가오는 시대요, 홍수 심판이 가까운 죄악이 관영한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가 죽던 해 노아홍수가 시작되었으니 그 시대가 얼마나 악한 시대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홍수심판을 앞둔 시대에 사는 에녹은 밖에 나가면 동행할 사람이 없고, 들어오면 마음을 함께할 사람이 없어 괴롭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일들이 해괴한 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고, 그려운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절대 안전한 생활이었습니다.

    2.
    하나님과 어떻게 동행하였나
    300
    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느리라"(11:5)
    바로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은 같이 걸어다녔다는 것이요, 같이 살았다는 뜻입니다. 서로 믿는 사이가 아니면 같이 걸어갈 수 없고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도 에녹을 믿었기에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도 뜻이 같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다같은 전도자이지만 의견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2차 전도길에는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였고 그 뜻을 따라갔습니다.

    또한 에녹은 그의 삶이 성결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에녹은 결코 세상을 등지거나 세상을 피해 숨어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예언자였습니다. (1:14-15). 이런 사람들을 두고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아라, 주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정죄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유다서의 두절밖에 안되는 글중에 불경건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오는 것만 보아도 그 시대가 얼마나 불경건한 시대이며 에녹이 얼마나 경건한 생활을 강조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불경건한 시대에 에녹은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향해 경고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악한 풍조와 사상이 범람하며 홍수가 임박한 시대에 에녹은 홀로 바른 신앙에 굳게 서서 깨끗하게 행동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이 데려간 에녹
    결국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24
    절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홍수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이 데려 가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화해와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죽음으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사실입니다.

    사람은 낳고 죽는 허무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죄를 범한 인생의 비극적 운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과 동행할 때 그처럼 허무하고 비극적인 운명도 극복이 가능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 우리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죽음을 극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끊임없이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뜻을 같이 하길 원하십니다. 구별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세상은 우리가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방안에서조차 컴퓨터를 통해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접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가 동행하기 위해서는 혼자있는 것을 즐겨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접속을 끊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홀로, 조용히 주님과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