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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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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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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예문

     

    교회는 관계이고 관계는 능력입니다.

     

    본문말씀 : 에베소서 1 19-23

     

    4년마다 찾아오는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얼마 전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계최강의 아트사커 ‘프랑스’가 가장 먼저 짐을 쌓아 본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영상에서도 충분히 설명이 되었지만 프랑스의 축구는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실력’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는 사실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통한 능력이 가장 강조되어야 할 곳이 교회입니다. 관계가 무너진 교회는 목적을 상실한 불필요한 조직에 불과합니다. 관계는 교회의 출발이며 온전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한 서신서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 19)”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강한 힘의 위력’을 보여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이 증명되는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1:20)”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능력은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 즉은 자가 살아난 곳이 아니라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현장’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에게 준비된 사형 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 속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살인자 바라바’보다 더 형편없는 범죄자로 손가락질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간 곳은 ‘왕궁’이었습니다. 이 땅의 왕이 태어나실 곳은 당연히 ‘왕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은 곳은 ‘베들레헴 마굿간’이었습니다. 이 땅의 왕이신 예수님은 가장 천한 자리인 마굿간의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지금 말로 하면 ‘노숙자’같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은 더 낮은 자리로 가셨습니다. 바로 흉악한 범죄자로 사형수의 신세가 되신 것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섬기기 위해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자들의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 섬기셨습니다. ‘섬김’은 관계를 온전하게 만드는 출발이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허시고 ‘관계’를 바로 세우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능력’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서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의 말씀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1:21-2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이 되셨고 만물, 즉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분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를 회복하신 예수님은 이 땅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시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섬기는 곳입니다. 이어서 23절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1:2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몸인 이유는 우리 중 한 지체가 고통스러워하면 모두가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몸의 세포, 힘줄, 신경이 연결된 것처럼 교회는 하나의 생명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한 명이 고통을 당하면 모두 괴로워하는 ‘생명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더 높이 십자가 탑을 쌓는 목적을 지닌 ‘건물’이 아닌 것입니다. ‘함께 모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의 지체! 한 생명에 더 열정과 사랑을 쏟는 곳이어야 합니다.

     

    한 생명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이 담긴 비유가 있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를 내어두고 길을 떠나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 대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8:13-14)”라고 설명하고 계십니다. 한 생명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100-1=99’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계산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계산법에 의하면 ‘100-1=0’이 됩니다. 한 생명이 사라지면 마치 ‘0’이 되는 것처럼 아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한 생명도 놓칠 수 없습니다. 한 생명과의 관계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목적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한 생명을 향한 관계를 위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자살한 인기 배우 ‘박용하 씨’에게는 좋은 친구들과 수많은 팬들이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그의 죽음에 수많은 나라의 팬들이 찾아와 애도했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관계를 가지기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생명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한 명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랑의 관계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명예보다 중요합니다.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수풀과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시는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관계인 것입니다. 교회는 이 사랑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1:23)’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실현됩니다. 그 통치의 능력은 교회를 통해서 시작되어지고 완성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실현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 교회는 바로 한 생명을 향한 온전한 열정과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한 생명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을 통한 관계는 만물을 온전하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